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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칭찬합시다] 설원의 얌체족

  • 조회수 : 1159
  • 작성자 : 성**
  • 작성일 : 2012-03-09
  • 문의처 : bjsung66@hanmail.net

                    설원의 얌체족

                                                                                 성병조

  꿈의 설원은 실로 눈부셨다. 현란한 몸짓으로 맘껏 기술을 자랑하는 스키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가슴 후련한 일이다. 자동차로 세 시간 넘게 달려온 보람이 이것인가 싶을 정도로 흠뻑 빠졌다. 하지만 당초 타기로 마음먹은 곤도라 매표창구 앞에서는 낭패감이 몰려왔다.

  곤도라를 타려면 무려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창구 직원의 말에 크게 실망하였다. 얼마나 먼 길이며, 얼마나 힘들게 달려온 여정인가.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한번 들린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장인어른의 오랜 병구완에 골몰하시는 장모님을 위로하기 위한 나들이이다.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에 올라가 눈경치를 만끽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싶었다. 곤도라를 타기 위해 긴 시간을 어디서 기다리며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낸단 말인가. 탑승을 포기하고 다시 설원으로 들어가 스키어들의 묘기를 감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한참을 구경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발길을 돌리면서 다시 바라본 조금 전 매표창구는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창구는 차라리 썰렁할 정도이다. 재빨리 달려간 아내가 확인한 대기 시간은 한 시간여. 조금 전 세 시간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표를 구입한 후 식당에서 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입장 순서에 맞추어 번호라도 방송해 줄 줄 알고 기다리다 궁금하여 탑승 대기 장소로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줄을 서서 족히 한 시간은 기다린 듯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 문의 할 때 표를 사 두었으면 훨씬 유리했을 거라며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기온은 영하 3도를 가리키고 있다.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훨씬 낮다. 모자의 옆 깃을 바짝 내려 귀까지 덮었다. 체면이나 폼 보다는 내 한 몸 건사가 더 중요하다. 이윽고 탑승 장소 앞에 이르니 믿기 어려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한 무리의 스키어들이 스키를 들고 당당하게 우리 앞으로 끼어드는 게 아닌가. 순간적인 급습에 할 말을 잊어 버렸다. 줄서서 하염없이 기다린 우리들을 어떻게 보고 이런 무례한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 때 마침 우리 앞에 서있던 관광객 한 사람이 강하게 불만을 쏟아내었다. 오래도록 기다린 우리들 앞에 새치기 한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기세이다. 한 마디 사과도 없는 그들이 괘씸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가 워낙 큰 소리로 항의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한마디 말도 거들기 어려웠다. 우리 옆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하고 있던 관리원도 방관만 하고 있어 더욱 화가 났다.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일도 있나? 중년 남성은 흥분한 나머지 이젠 원색적인 욕설을 섞어 주먹이라도 한방 날릴 태세이다. 만류하는 부인도 안중에 없었으며 이러다간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까봐 모두가 염려하는 눈치이다.

  이때 건장한 체구의 스키어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면서 외쳤다. 자기들은 오십만원짜리 회원이라며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투로 반격해 나왔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들은 만이천원짜리 싸구려 인생이라도 된단 말인가. 치미는 분노를 자제하기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싸움판에 끼어들까봐 걱정이 되었던지 아내가 내 소매를 잡아당긴다. 불의를 보면 잘 참지 못하는 내 성정을 염려해서이다.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시간 넘도록 기다린 우리 앞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무법자처럼 끼어든 얌체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만인이 평등해야할 리조트에서 저질러지는 가진 자의 횡포를 묵과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이것이 합당한 처사인가. 스키장에서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일이라면 여간 실망스런 일이 아니다. 스키어들을 위한 리프트가 별도로 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붐비는 곤도라로 몰려든 이유가 궁금하다. 좀 더 빨리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니면 공간에 노출된 리프트에 비해 찬바람을 막아주는 곤도라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공평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돈만 있으면 새치기도 합리화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장시간 기다린 보람도 없이 억울하게 밀려나도 아무 말 못하는 세상이라면 너무도 실망스럽다.

  보통 시민이 출입하기 어려운 스키장에서 벌어진 가진 자의 횡포를 부모 따라온 어린이들이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까.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부모의 권위를 보는 듯해 가슴이 쓰려왔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위락 시설이요,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유명 스키장에서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돈 없으면 가진 사람들로부터 권리를 침해당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금권 만능의식이 팽배한 세상이 될까봐 두렵다. 모처럼의 나들이에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잠시 동안 즐거웠던 기분은 싹 가시고 서글픔이 몰려왔다.

(201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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