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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군정

당산리

당산리(堂山里)

읍내리의 남대천 건너 남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당산리는 조선시대에는 부내면에 속했다. 옛적부터 화산(華山)으로 불리었는데, 동네를 에워싸며 서쪽으로 뻗어 내린 남산의 서쪽 끝에 당미산(堂尾山)으로 부르는 당뫼(堂山)가 있어 당산리로 지명을 삼았다고 한다.
현재의 당미산은 본래 당뫼, 즉 당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당묘(堂廟) 즉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산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데, 후에 발음이 변하여 당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 위에는 옛날의 건물지로 보이는 유구(遺構)가 남아있고, ≪적성지(赤城誌)≫의 ‘무주관아도(茂朱官附圖)’에는 산왕당(山王堂)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보아 당산이라는 지명도 당뫼나 당묘에서 연유된 것으로 여겨진다.
옛적에는 적상산사고를 찾는 중앙의 관료들이 읍내의 남교(南橋)를 건너고 이 곳을 거쳐서 오르는 길목이었기에 ‘건너마을’이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유속동과 당산을 병합하여 무주면 당산리라 하였고, 그 후 당산1리16)와 당산2리17)로 리명(里名)을 붙였는데, 1972년 자연마을 이름을 붙이면서 당산과 유속 등의 마을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당산(堂山)마을[元堂山·건네(너)마을]

남대천(南大川) 건너 마을로 옛적부터 ‘건너마을’로 불렸던 원당산마을이다. 본래 이름은 ‘화산(華山)’인데, 한 때는 ‘오류촌(五柳村)’ 또는 ‘오류정(五柳亭)’으로 불리었다.
오류촌이라는 지명은 조선 선조 때의 무신(武臣) 장의현(張義賢) 장군이 이 곳에 머물러 살면서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본인의 호를 오류정(五柳亭)이라 지은 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동구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숲거리’라 부른다. 또한 지금의 ‘버드속골’, 즉 유속(柳屬)마을도 오류촌에 속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적상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의 북쪽으로 흘러 ‘압수골’과 ‘모수골’을 이루고 남대천으로 유입되어 흐르면서 옛적에 삼농사를 경작하던 ‘마(麻)들’과 ‘성밑들(城底坪)’을 이룬다. 또한 남대천변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벙구들이 강선대에 닿는다.
조선시대 동헌(東軒) 앞 냇가에 위치하던 한풍루(寒風樓)가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이 지역으로 옮겨졌으며, 그 옆에는 공설운동장과 지남공원이 있고, 2002년 11월 준공된 무주예체문화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한풍루 어울터 공원이 조성되는 등 무주군민의 문화예술체육의 중심지이면서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네 어귀 숲거리에는 효자 유경제(柳景堤)와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 정려각(旌閭閣)이 있고, 마을 동편 언덕 위에는 농업기술센터와 2002년 신축하여 이전한 무주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건너마을 냇가 부근에 있는 갱변땀, 건너마을 골짜기 부분이 되는 골땀, 건너마을 옆에 있는 큰 마을인 큰땀 등이 있다.

유속(柳屬)마을

본래 ‘버드속골’이라 불리었는데, ‘버드나무골’에 딸린 마을이라는 뜻이다. 당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유씨들의 마을이었다고도 한다. 당산마을의 옛 이름이 오류촌이라 불리었을 때, 오류촌에 속한 마을이이라는 뜻에서 유속동으로 불리었는데, 윗버드속골(上柳屬)과 바깥버드속골(外柳屬), 안버드속골(內柳屬) 등 3개의 자연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 우림수골(牛鳴洞)은 당산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전에 소를 놓아기르던 골짜기라 하며 와우형(臥牛形)이라고도 한다.
2002년 내도교와 후도교 모두 새로운 공법을 사용한 교량으로 대체되었다.

담당부서 :
무주읍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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